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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평시민의소리 <오피니언> 새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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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성한 작성일20-05-30 20:44 조회5,874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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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새참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김성한 수필가

 

모내려고 물 잡아놓은 논에 산 그림자가 내려앉았다.

햇살이 엿가래처럼 축 늘어진 오후, 내 뒷그림자는 거무스름한데

저 논물 거울에 비친 산 그림자는 푸르스름하다.

​논물 거울도 싱그러운 오월 신록에 마음을 빼앗겼는가.

논둑 위로 올라선다. 논물 거울에 나를 비춰본다.

​그 옛날 하얀 얼굴에 까맣던 머리는 어디로 가고 머리 훌렁 벗어진 중늙은이가 서 있다.

'대머리 늙은이는 논물 거울이 싫어해요.’

​위 논배미에서 나를 지켜보던 백로가 한마디 던지며 후다닥 날아간다.

    

‘착착 착 윙윙’이앙기 모내는 소리가 들린다.

​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 논배미에서 할아버지가 이앙기로 모를 내고 있다.

​숨을 헐떡이며 뒤뚱뒤뚱 걸어가는 이앙기 꽁무니에는 연 푸른 모가 줄을 그으며 따라간다.

물 잡아놓은 논둑길로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온다.

​얼기설기 묶은 보따리 귀퉁이에는 ‘ㅇㅇ막걸리’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다.

​사람 복닥거리는 장터 골목에서만 지낸 막걸리. 그도 모내는 들녘이 궁금했던가.

​일을 하다말고 할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돈다.

​할머니가 새참을 들고 오는 모양이다.

 

초등학교 시절 뻐꾸기 울어대는 지금쯤이면 모심기를 했다.

그 당시 모내기철이 되면 '가정실습'이라고,

​초등학교에 다니는 꼬맹이들도 사나흘은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일을 거들었다.

모내기하는 날, 두레꾼 대여섯 사람은 이른 새벽녘부터 모판에서 모를 찌고,

​아버지는 흙탕물 가득한 논에 암소를 부려 써레질을 했다.

‘이랴 이랴 워워’아버지의 소모는 소리에 암소 목덜미 워낭이 딸랑딸랑 대답했다.

​써레질 끝난 무논에는 제비 떼들이 몰려와서 한바탕 춤사위를 벌였다.

​

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모내기가 오전 반나절이 지날 때쯤이면,

​어머니는 새참을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논둑길을 걸어왔다. 막걸리 주전자도 함께 왔다.

​어머니가 내려놓은 놓은 새참 소쿠리 안에는

지난 오일장에서 사 온 고등어구이 몇 마리와 맷돌에 갈아 만든 두부조림이 들어 있다.

​모두 얼굴에 흙을 묻힌 채로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켠다.

​이럴 때면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살진 바람도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간다.

도회지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 공납금 얘기에 농주(農酒) 들이켜는 속도가 빨라진다.

​수심(愁心) 가득한 얼굴들이 금세 불콰해진다.

 

사람이 살다 보면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찾아 먹는 세끼 식사보다,

​중간에 먹는 새참 같은 삶이 그리울 때가 있다.

​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 보다 조연의 연기가 더 맛깔스러울 때가 있듯이.

 

지금 농촌에서는 논밭 둑에 삥 둘러앉아 새참 먹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.

​누구네 집 할 것 없이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버리고

나이 드신 어른들만 집을 지키고 있는 터라 새참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.

​가끔은 빵 몇 쪼가리에 커피로 새참을 대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.

 

노부부가 논둑에 앉아 새참을 드신다.

​할아버지가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켜자

할머니가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할아버지 입에 넣어준다.

애옥살림에도 끊임없이 내주며 살아온 삶,

​농사지어 튼실한 것은 자식들한테 보내고 못나고 흠 있는 것은 당신들 몫이리라.

노부부의 소박한 삶이 써레질해놓은 무논에 일렁거린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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