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꽃신 할머니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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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성한 작성일17-07-22 09:00 조회6,041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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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앙신문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          꽃신 할머니​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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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성한(수필가, 본지 칼럼위원)

슬레이트집들이 이마를 맞대고 있는 마을이 훤해졌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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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마을 어귀에 만들어 놓은 꽃밭 때문입니다. 꽃내음이 진동합니다. 

 

형형색색의 채송화, 봉숭아, 맨드라미, 나팔꽃이 함박웃음을 머금고 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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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어림으로 봐도 열댓 종류나 됩니다. ‘아빠하고 나하고 만든 꽃밭에…….’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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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어릴 적 골목길을 쏘다니며 불렀던 동요가 생각납니다.

​

 

등이 구부정한 할머니가 갈라진 흙살을 뚫고 올라온 채송화와 눈 맞춤을 하고 있습니다.

 

꽃신 할머니입니다. 꽃무늬를 새겨 넣은 신을 신고 다니는 할머니를, 동네 사람들은 ‘꽃신 할머니’라고 부릅니다.

 

할머니의 등 뒤로 유월의 따사로운 아침 햇살이 살포시 내려앉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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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곳이 꽃밭으로 변한 지는 그리 오래되지 않았습니다. 

 

이 땅은 원래 기와집이 서 있던 자리입니다. 

 

그 집에서 평생을 사셨던 할머니가 돌아가시자 빈집이 되어버렸습니다.

 

낡고 오래된 집에다 돌보는 이가 없으니, 할머니가 돌아가신 지 몇 해 지나지 않아 

 

지붕은 내려앉고 벽은 허물어졌습니다. 

 

어느 날부터인가 잡풀만 무성한 마당에는 마을 사람들이 몰래 내다버린 쓰레기가 쌓여가기 시작했습니다. 

 

음식물 찌꺼기에다 비닐봉지, 헌옷가지, 찌그러진 냄비 등 온갖 잡동사니들이 지천으로 널려 있었습니다. 

 

여름이면 악취로 코를 막고 지나다녔습니다. 냄새 때문에 이웃 간에 다투는 일도 잦았습니다. 

 

마을 이장(里長)이 방송이나 모임 석상에서 몇 번이나 신신당부를 해봤지만, 쇠귀에 경 읽기였습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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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오죽했으면 ‘이곳에 쓰레기를 버리면 삼대가 망한다.’라는 다소 섬뜩한 푯말까지 세워 놓았을까요. 

 

그러나 보니 자연히 이웃 간에 정도 멀어지고 인심도 흉흉했습니다.

​

그러한 마을이, 꽃신 할머니가 이곳으로 이사를 온 뒤로부터 달라졌습니다. 

​

 

그 지난해 봄입니다. 할머니 혼자서 한 스무남은 평 되는 이 빈집 안마당을 꽃밭으로 일구기 시작했습니다. 

 

잡다한 쓰레기를 걷어내고 괭이와 삽으로 밭이랑을 만든 다음 꽃을 심었습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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꽃 종류도 윤기 나는 꽃이 아니었습니다. 채송화, 봉숭아 등 골목길이나 흙담장 위에서 흔히 보던 꽃입니다. 

 

​할머니는 햇볕 쨍쨍 내리쬐는 여름에도 쉬지 않고 꽃을 돌봅니다. 풀도 뽑고 비료도 주고 목이 마를까 봐 물까지 주는 등 

 

마치 자식 키우듯 했습니다. 

 

어떤 날은 도회지에 사는 아들과 손주들이 우 몰려와서 거들어줄 때도 있었습니다. 

 

그런데 참 이상한 일이 벌어졌습니다. 꽃밭이 생기고 나서부터는 쓰레기를 아무렇게나 버리는 일이 사라졌습니다. 

 

동네 사람들끼리 아근바근 다투던 일도 없습니다. 서로 멀뚱멀뚱 쳐다보기만 했던 사람들이 만나면 

 

반갑게 인사를 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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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 아침, 또각또각 구둣발 소리를 내며 지나가던 생머리 처녀가 걸음을 멈추더니 맨드라미 향기를 맡습니다. 

 

맨드라미도 처녀의 미모에 반해서인지 활짝 웃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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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을 앞 철로 위로 중앙선 열차가 지나갑니다.

 

처녀와 눈맞춤, 아니 입맞춤을 하는 맨드라미를 보니 샘이 나는지 꽥! 소리 지르며 지나갑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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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자기 물음표(?) 두 개가 떠오릅니다.

​

마을 사람들이 이렇게 변한 것은 꽃신 할머니의 땀 때문인가요?

​

아니면 여리고 고운 꽃들의 웃음 때문입니까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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