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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모습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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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성한 작성일17-08-10 09:45 조회6,043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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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앙신문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겉모습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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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성한(수필가, 본지 칼럼위원)

누런 호박이 결가부좌를 틀고 앉았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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촌부의 펑퍼짐한 엉덩이를 닮은 호박이 안방 화장대 위에서 면벽참선을 하고 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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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 아침나절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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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가 호박 한 덩어리를 들고 안방으로 들어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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굴곡이 심한 쭈그렁 호박입니다. 여태 이런 일은 한 번도 없었습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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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다 누런 호박이 생기면 창고 안이나 테라스 한쪽 구석빼기에 처박아 놓았습니다. 

 

그런 아내가 느닷없이 안방에, 그것도 화장대 위에 놓다니. 

 

옹골진 호박 주름을 보니 마음이 짠해서 그런가요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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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박은 자라는 땅부터 홀대를 받습니다. 

 

밭이랑이나 토양이 비옥한 남새밭에는 언감생심 발 들어 놓을 엄두를 내지 못합니다. 

 

기껏해야 밭둑이나 냇가, 산기슭에다 둥지를 틉니다. 

 

둥그렇게 파놓는 구덩이에 씨를 뿌리고 인분 한 바가지만 넣어주고는 나 몰라라 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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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 천덕꾸러기 호박이지만 버릴 게 별로 없는 식물입니다. 

 

어릴 적 여름이면 두레상 위에 자주 오르던 것이 호박 잎 쌈입니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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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기떼가 앵앵거리는 여름날 저녁, 모깃불 피워놓은 안마당 살평상에 앉아

 

날된장에 보리밥 한 덩어리를 호박잎에 싸서 먹었습니다. 

 

애호박은 전을 부치거나 부침을 해서 먹습니다.

 

동전처럼 동그랗게 생긴 ‘동그랑땡’은 술안주로 제격입니다.

 

늙은 호박은 호박떡을 해 먹고 호박죽도 끓여 먹습니다.

 

호박죽은 산후조리에 좋습니다. 요즘 말하는 참살이(Well­being) 식품입니다.

 

씨도 버리지 않습니다. 호박은 이렇게 젊으나 늙으나 다 쓸모가 있습니다. 

 

‘둥글둥글 호박 같은 세상’이라는 노랫말도 있지 않습니까. 

 

각박한 세상살이 모나게 살지 말라는 메시지가 들어 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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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에게는 고치기 어려운 벽(癖)이 하나 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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칠순을 코앞에 둔 나이인데도 허우대가 헌칠하면 속까지 꽉 찬 줄 아는 덜 여문 버릇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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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 해 전 어느 봄날 저녁, Y대학교 평생교육원에서 ‘고급 수필론’이라는 수업을 받을 때였습니다. 

 

내 옆자리에 입성이 추레한 사람이 앉아 있었습니다. 

 

얼굴은 봄 햇 볕에 그을려 시커멓고, 손톱에는 때가 덕지덕지 끼어 있었습니다. 

 

땀 냄새도 났습니다. 막노동하는 사람 같았습니다. 

 

공사판에서 막일하는, 일명 ‘노가다’ 주제에 고급 수필론 강의를 듣다니……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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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 그게 아니었습니다. 

 

알고 보니 「냉면」이라는 제목으로 모 일간지 신춘문예에 당선된 사람이었습니다. 

 

수백 명이 넘는 응모자 중에 단 한 사람을 뽑는 신춘문예 당선 작가였습니다. 

 

그날 저녁 미안하기도 해서 그 냉면을 내리 세 번이나 읽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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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가 물걸레로 호박 얼굴을 닦습니다. 

 

누르죽죽하던 호박 얼굴이 금세 반질반질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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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‘그래 맞아. 겉모습만 번지르르하면 속까지 꽉 찬줄 아는 그 못난 버릇을 이제는 고쳐야지.’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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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 모르게 아내가 쥐고 있던 물걸레를 빼앗아 호박 얼굴을 닦습니다. 

 

아내가 무슨 생뚱맞은 짓이라며 눈을 치켜뜹니다. 

 

그러나 그것도 잠시, 호박처럼 쭈글쭈글한 아내 얼굴에 웃는 낯꽃이 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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